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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흔들리는붕어빵18 작성일 26-09-25 09:15 조회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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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집 어머니의 연서​책머리에 아들의 집 의왕에서마무리 원고를 정리합니다. 이번 나의 처녀 수필집은어린 시절을 배경으로친정어머니와 함께한삶의 한 단편이기도 합니다. 한고비 굴곡을 묶어서하느님 앞에 고백성사를 보듯내 안을 정갈하게 비워내며그리움으로어머니 영정 앞에 올립니다. 수필을 배우려용지 호숫가 공부방에서창신대 문예창작학과에서정목일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아직 영글지 못한수필집으로부끄러움 크지만선뜻 서평을 써 주셨습니다. “수필은 자신과의 대화이다.수필을 쓰기 위해선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교수님의싱그러운 가르침을 되새기며다시시작하는 마음으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또 한 분,도월화 소피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수필의 길로 저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이끌어 주셨던 분입니다. 수필집을 내기까지격려와 함께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손정란 선생님께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원고와 밤잠을 설쳤던 날들,뒤에서 묵묵히 힘을 실어준 가족들에게사랑의 마음을수필집으로 대신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9년 여름 백운 호수에서 허정란​​차례 1부 가을이 머무는 자리 은총이...................어머니와 게발선인장..........어머니의 텃밭..............윤슬이...................어머니의 복숭아 장사.........어머니의 빈집............가을이 머무는 자리............어머니의 능선.................어머니는 토끼띠.............보드라운 서울말............어머니의 연서..............이루지 못할 약속.......... 2부 나만의 다락방............... 경주 유적지를 돌아보다........시간 속으로..............오십, 마음의 경영...........수필 속에서 시를 쓰다...........유언장....................나만의 다락방.................자기소개서....................다르다는 것................내가 가장 못됐을 때...........야간 근무................... 3부 양지 골 그리움이라는 병............고운 사람이 될 기라.........천국, 떼어 놓은 당상.........상엿소리...............양지 골.................오라버니의 기일에...........고별식..................회상.........................엄마와 이모 집 나들이........사모곡.................. 4부 진달래가 뭐꼬?.. 첫눈......................그곳에 풍경이 있었네.......손님.......................놀란 가슴............아들의 군 입대..........군에서 온 소포..........이등병 요셉에게..........하루 품삯.................아들 집 이사............진달래가 뭐꼬?...........봄, 봄......................보금자리..............수은간, 그곳에 가고 싶다 .............. ​5부 하늘 우체통 겨울 단상...........가을 여행..........나 자신과의 화해...........가을 사랑...........가을 하늘을 닮은...........살아가는 동안........정월 초하루에............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마음 다지기..............미안해요, 예쁜 우리 엄마..........간격.......................명절 제사...................하늘 우체통.............도서관에서 보내는 여유..............강변에 비가 내리고..............생명.........................왜 바람이 몰고 가면?............찬물 날아가는 소리.........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어머니의 기도.........산행............감사함으로.................서평.......................​​​​은총이 차가운 바람이 뒷문을 덜컹거릴 때마다 녀석이 마음에 걸린다. 아니나 다를까. 바깥으로 나가는 다용도실 뒷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엉거주춤 서 있다. 유리문을 통하여 주인의 기척을 느꼈는지 낑낑거리며 발길질을 해댄다. 은총이를 처음 봤을 때다. 성당 입구 벽면에 지금까지 보살펴온 내용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예방 접종한 지 50일 되었습니다.’ 짤막한 벽보 앞에 밥그릇으로 쓰였던 접시와 작은 사료 봉투가 놓여 있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때쯤으로 하얀 털에 갈색 반점이 있는, 비쩍 말라 부실해 보였다. 수녀님이 ‘은총이’라는 이름을 지어 마당이 있는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왕방울처럼 툭 튀어나온 눈은 보기에도 겁이 많아 수런대는 소리에도 박스 안으로 곧장 몸을 숨긴다. 은총이를 안아본다. 기가 잔뜩 죽은 작은 몸을 더욱 웅크린다. 며칠은 주변을 경계하며 박스 속에서 잠을 잤다. 예전의 백구가 사용하던 큰 개집이 마당 귀퉁이에 있건만 거들떠보지 않고 박스 안에 들어박혀 있다. 은총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밥그릇도 말끔히 비워냈다. 살이 오르고 키가 한 뼘씩 자라면서 자신의 공간도 넓혀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듯 주변은 난장판이 되었다. 현관의 신발은 물론, 뒤뜰의 남새밭은 녀석이 함부로 짓이겨 놓아 초록빛을 잃어갔다. 아무 데서나 일을 보는 습관 때문에 냄새에 민감한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무던한 편인 나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녀석의 뒤를 따라다녀야 하는 수고가 늘어나자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다. 강아지를 보낼만한 곳을 알아봐야 했다. 막상 농장에서 연락이 오자 녀석에게 눈총을 주던 남편이 주춤거린다. “일 년 정도 지나면 철이 든다는데?”그동안 쌓은 정을 무 자르듯 단박에 어찌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추위가 아직 꼬리를 무는 아침나절이었다. 언뜻 보기에 허수아비가 새를 쫓듯, 은총이가 절뚝거리며 앞다리를 치켜들고 두 발로 서서 뛰어온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녀석을 붙들고 발바닥을 들여다봐도 어디가 아픈지 종잡을 수가 없다. 몸까지 으스스 떤다. 털실로 짠 반팔 샤스를 입혀본다. 그동안 성가셨던 마음은 사라지고 착잡한 마음은 물 위의 수련처럼 수심으로 찰랑거린다. 은총이가 마당을 오락가락한다. 하루 전 접질렸던 다리는 말짱하다. 어느 때보다 반색을 하며 흰털을 쓰다듬어본다.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선무당처럼 날뛰던 녀석도 이제 철이 들어가며 우리는 한 식구로 자리 잡아간다. 은총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여름휴가를 낸 딸애가 친정에 오면서 털이 고운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데려왔다. 빵이는 세모꼴 걸음걸이를 하며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하얀 털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은총이와는 본디 태생이 다르듯, 마루의 방석 위에서 앞발을 우아하게 접으며 말린 베이컨을 간식으로 먹었다. 은총이는 덤으로 하나씩 던져주는 베이컨으로 만족해야 했다. 갓난아기인 손녀의 호흡기 질환이 걱정되어 빵이의 자리가 마당으로 옮겨졌다. 빵이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생김새와는 달리 앙칼지고 이기적이었다. 간식을 먹을 때는 은총이를 경계하며 제 몫을 챙겨 쏜살같이 옥상으로 도망치곤 했다. 은총이는 이제껏 주인 곁을 맴돌며 제 밥그릇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빵이가 녀석의 밥그릇에 욕심을 낼 때부터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두 놈은 치열하게 밥그릇 싸움을 하였다. 빵이가 귓등에 피를 흘리면서 서열 다툼은 끝이 났다. 자세를 한껏 낮춘 빵이는 은총이 뒤에서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우아한 털이 거무죽죽하도록 쏘다니며 수시로 은총이 밥그릇을 노리긴 했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물병원에서 매끈하게 털을 자른 빵이는 은총이와 작별하고 한 달 만에 용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은총이가 새끼를 가졌다. 머잖아 어미가 된다. 아무 데나 잠을 자던 녀석이 신기하게 어느 날부터 짚이 깔린 백구의 나무집에서 잠을 청한다. 사료를 보충하고 개집의 허술한 곳을 단속한다. 곧 태어날 새끼를 생각하며 따뜻하고 안전하도록 은총이가 몸 풀 자리를 마련한다. 어미와 떨어져 버려졌다는 마음이 인간과 다름없이 얼마나 낯설고 불안했을까. 외롭고 무서웠을까.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은총이는 불안함을 몰아내고 우리 집에서 안정을 찾고 어미가 되는 것이다. 녀석이 고마울 따름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음 한구석이 스산하다. 길바닥이 꽁꽁 얼어붙는 추위였다. 그해 겨울, 큰오빠가 병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위기가 닥쳤었다. 지금까지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던 오빠였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막내 경이는 휴학했고 나는 야간고등학교로 전학하면서 진주 이모 집으로 왔다. 그 시기, 오빠의 죽음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직장과 학교를 병행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나날이 불안과 긴장감으로 소심해져 갔다. 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성실, 모범적이나 조용하고 말이 없다’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다행히 이모와 이모부님의 자상한 배려에 예전의 밝은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두 분이 어루만져 주었던 애정은 ‘측은지심과 자비로움’으로 오랜 시간 내 안에서 따뜻한 성품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은총이가 대문 소리에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 내려온다. 반가워서 코를 킁킁거린다. 머리를 들이대다 꼬리를 흔들며 앞 질려 올라간다. 녀석의 충직함에 단단한 결속력을 느낀다. 성가시고 불편했던 긴 시간이 지나가고 한 식구로 거듭나는 요즘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어 간다. 공감대에서 오는 풍요로운 기쁨이다. 맑은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은총이가 들깨 마당에 새 떼를 쫓는다. 킁킁. 어머니와 게발선인장 창문가 게발선인장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며 서리꽃이 핀 거실 유리창을 환하게 밝힌다. 그해 겨울, 거창의 친정에 가는 길이었다. 오후부터 내리던 가랑비가 산청을 지나면서 진눈깨비로 변했다. 쌓이는 눈으로 길은 점점 미끄러워지면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딸과 사위를 보자 마음을 놓는 어머니의 등 뒤로 게발선인장의 선홍색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우리를 반기며 추위를 가시게 했다. 농사일로 분주한 어머니는 생명력이 강한 게발선인장과 궁합이 맞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숨 고르기를 할 즈음이면 싱싱하게 꽃봉오리를 맺었다. 집으로 올 때 몇 줄기 가져와서 청색 자기 화분에 심었더니 튼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두 해 전, 이맘때 어머니가 우리 집에 계셨다. 선인장의 붉은 꽃망울이 점점이 피어올랐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화사하게 핀 꽃송이가 신비롭고 정겨웠다. 창문가에 있던 화분을 마루 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평소 안목이 높은 어머니에게 자리가 적당한지 물으니 ‘집안이 환하다’라며 기뻐했다. 겨울이면 찬 공기와 어우러져 꽃을 피우는 강건함이 좋아서일까. 어머니는 게발선인장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화장실을 드나들 때면 신경이 쓰였다. 혹여 밤에 불편한 다리로 머리라도 부딪히면 어쩌나 불안했다. 거실을 오가며 ‘참 좋다’고 흐뭇해하실 때면 망설이다 이틀 만에 화분을 창가로 옮겼다. 다시 제자리에 놓인 선인장을 보고 아쉬워하는 어머니를 슬그머니 외면했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소소한 용품을 사러 시장에 들렀다. 혼자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서둘려 현관문으로 들어서다 깜짝 놀랐다. 선인장 화분이 거실 한가운데에 반듯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선홍색 꽃이 넌출 거리며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당신 몸도 가누기 힘든데 어떻게 마루로 무거운 화분을 옮겨 놓았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어머니는 걸음을 걸어보았는지가 오래되었다. 화장실이나 집안 곳곳을 항상 기어서 다녀야만 했다. 가쁜 숨을 몰아가며 화분 밑으로 큰 수건을 밀어 넣어 조금씩 끌어오는 모습이 상상된다. 얼마나 애를 썼던지 하반신이 흥건했다. 그날 저녁 허리에 파스를 몇 장씩 붙이고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시집간 딸애가 해산달이 다가와 한 달쯤 집을 비워야 했다. 서울 큰언니 집으로 거처를 옮겨 가실 때 우리 집을 떠나기 싫어했다. 고향 가까이서 있고 싶어 했다. 된장국 하나만 끓여 놓으면 혼자 밥 챙겨 먹고 있겠다는 어머니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나무라기만 했다. 어머니는 고향 집에서, 자식들이 다 모였을 때, 하루아침에 죽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큰언니 집에 계시면 한 달 뒤에 모셔 오겠다고 어머니께 드린 약속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남았다. 시월 끝자락, 어머니는 새벽녘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제 앞가림에 바쁜 자식들은 어머니가 운명하실 때 옆에서 손을 잡아 드리지 못했다. 자식들이 지켜보지 못한 채, 어머니 저세상 가시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아홉 달 만에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어머니의 빈집에 영구차가 왔다. 영정 사진 속에는 검은 머리에 젊은 모습의 어머니가 웃고 있다. 집 안 구석구석 둘러본다. 옥 장판, 흰 고무신, 가을이면 들국화를 꽂았던 빈 항아리, 눈을 감고도 환한 그리운 정경에 잠시 눈길이 머문다. 어머니는 소원대로 평생 꿈이셨던, 아버지의 묘와 합장을 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다 돌아가셨다. 묘지 앞 상석에는 두 분의 이름과 함께 자식들 이름을 새기는 것으로 뿌리의 흔적을 남겼다.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는 상실감으로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동그라진다. 며칠만 시간을 다시 돌려준다면, 백발 얼굴에 따듯한 두 볼을 마주 비벼보고 싶다. 요양원에서 못했던 천 기저귀를 뽀송뽀송하게 채워드리고, 통증에 못 이겨 약을 사탕 먹듯 졸랐던 소원을 풀어드리고 싶다. 돌이킬 수 없는 그리움이 천근만근 내 안에 쟁여온다. 대림절 고백성사를 보면서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을 추스른다. 이 세상 수고로움을 다 내려놓으시고 천국 낙원에서 영원하시기를 성모님께 청한다. 창문가 게발선인장이 해바라기를 한다. 한평생 자식들이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가 무시로 그립다. 돌아오는 봄에는 분갈이하여 튼튼히 뿌리를 내리게 해야겠다. 어머니 거처 문제로 잠시 불편했던 동기간들에게 살가운 마음으로 화분을 선물로 보내야겠다. 하반신을 바닥에 밀며 수건으로 게발선인장을 끌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다시, 화분을 거실의 중앙 탁자 위로 옮겨 놓는다. 어머니의 텃밭 화단의 매화나무에 꽃봉오리가 맺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이 지나고 봄기운이 돌아 새싹이 꼼지락거린다. 이즈음 농부들은 봄갈이를 준비한다. 방송에서 오늘은 비가 오겠다고 하는 말에 남편의 마음이 바빠졌다. 흙이 질퍽해지기 전에 농기구 센터에서 관리기를 빌려 밭갈이를 한다. 농사일에 익숙하지 않아 농기구를 다루는 일도 만만찮다. 바퀴를 칼 고리로 바꿔 끼우고 겨우내 얼었던 밭을 갈아엎으려니 영 서툴다. 반나절쯤 지났을까. 드디어 밭이랑이 만들어지며 그럴듯하다. 남편이 대수술하고 나서 몸과 마음을 굳건하게 가다듬으려고 시작한 일이다. 어정잡이 농사꾼이지만 온 힘을 다해 이랑을 만드는 모습에서 새삼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한평생 농사만 지으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몇 년 동안 누워 계셨다. ‘병든 주인이 일꾼 아홉 몫을 한다.’는 평소 말씀처럼 어머니를 모셔 올 수만 있다면, 힘찬 기운으로 온갖 일을 일러서 시킬 것 같아 간절한 마음이었다.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던 어느 봄날, 대여섯 살 아이는 하얀 꽃에 정신이 팔려 밭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텃밭까지 나왔다. 흐드러진 감자 꽃은 이상하게 호젓한 쓸쓸함을 주었다. 난데없이 날아온 똥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적막감을 깨트렸다. 난생처음으로 맛보는 혼자라는 외로움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감자 꽃이 하얗게 피었던 텃밭은 또래를 찾던, 사회성에 어슴푸레 눈뜨던 시기였다. 어머니의 텃밭은 이채로웠다. 감자 철이 지나면 고구마 넌출이 뻗어나고 무 배추가 빼곡했다. 저만치 밭둑 가장자리에 하늘 높이 솟은 밤나무와 감나무는 바람결에 열매가 익어갔다. 다람쥐처럼 나무 타기를 잘하는 큰언니가 어쩌다 감나무에 오르면 홍시를 맛보곤 했다. 텃밭에서 땀을 쏟아낸 정직한 소출은 어머니의 장바구니가 되어 가난에 쪼들리는 살림에, 특히 육 남매의 학비에 보탬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톨을 까며 밤새 아랫목 이불 속에서 잘 삭은 감을 고르는 일은 온 식구가 마음을 한데 모으는 시간이었다. 자식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날 무렵 텃밭에도 변화가 왔다. 어머니는 병충해 때문에 유실수를 베어 버리고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는 데 힘썼다. 텃밭의 키 작은 뽕나무는 한결 잎을 따기도 쉬웠다. 막내가 결혼하여 미국에 이민을 할 때였다. 봄누에를 치는 계절이라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이듬해에 뽕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렸을까. “아프지 말고 자주 연락해라.” 글썽한 눈으로 공항에서 막내딸을 껴안으며 이별을 했어도 아플 마음이었다. 하물며 읍내 주차장에서 황망히 보냈으니 두고두고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뽕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고추 모가 심어졌다. 밭고랑은 풀 한 포기 없이 옥토로 가꾸어져 어머니의 강건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막내를 보내고 가을볕에 익어가는 붉은 고추를 자식을 사랑하듯 대했다. 하우스 볕에 잘 말린 고추는 시장에서 내다 팔아 푼푼이 적금 통장을 만들었다. 팔순을 한 해 앞둔 봄, 낡은 기와집이 허물어지고 빨간 이층 벽돌집을 올려졌다. 어머니의 강직함은 우리를 경탄하게 했다 마루가 사라진 새집을 쓸고 가실 때마다 어머니는 막내 생각에 젖었다. 낡은 마루를 닦으며 거무튀튀하여 빛이 안 난다고 탓하던 아이였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두 모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갔다. 당신께서는 그간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었으리라. 어머니는 일찍이 아버지의 본향에 둥지를 틀었다. 서른여섯에 홀로되어 호밋자루 잡는 법부터 익히며 농사일을 시작했다. 병상에서 거칠어진 손바닥에 뭉개진 손톱이 본살로 돌아왔지만, 이마에 큼직하게 저승꽃 하나 새기고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로 가셨다. 주인 없는 빈집 돌담 위로 노란 개나리가 고갯짓한다. 어머니의 텃밭이 묵정밭이 되어간다. 첫해는 들깨 농사를 지었지만, 지난해부터는 비워 두었다. 대도시에 있는 형제들은 서로들 텃밭을 가꿀만한 여력이 없다. 요즘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는 이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농부가 사라지는 시골 논밭은 해가 갈수록 잡풀로 무성하다. 어머니의 땀방울이 스며든 텃밭이 묵정밭으로 애를 태운다. 텃밭은 어린 시절의 고향이다. 텃밭을 기름지게 가꾸었던 어머니의 강건한 정신을 이어가지 못하여 죄송스럽다. 유실수를 심을지, 도라지를 심어야 할지. 고민하며 묵묵히 마음 밭에 호미질 한다. 윤슬이 털이 부드러운 부엉이 인형을 어루만져 본다. 크고 동그란 눈이 어쩐지 손녀의 표정을 닮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작은 몸을 안아도 보지만 내리뜬 눈은 당최 시선을 주지 않는다. 새침하고 도도한 손녀의 모습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설을 보름 앞두고 딸아이한테서 급히 연락이 왔다. 직장 일로 두 주 동안 교육이 있으니 아이를 좀 맡아 달라고 했다. 둘째를 가져 몸도 무거울 텐데, 이튿날 우리 부부는 서둘렀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은근히 손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잠시라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찾는데 앰한나이로 네 살인 손녀가 보름 동안 잘 있을지 걱정스럽다. 손녀는 신통하게도 엄마를 찾지 않는다. 붙임성이 있어 예쁘고 놀랍다. 오히려 날마다 통화를 하는 딸애가 서운하여 안달한다. 속이 훤한 아이는 엄마가 몇 밤 자면 오는지 손가락을 꼽는다. 손녀와 함께하는 날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아이는 휴대폰을 두고 할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 유튜브에서 애니메이션 만화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자동차 보험 회사에서 전화로 인하여 동영상이 끊어졌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할아버지에게 휴대전화기를 달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통화가 끝나면 보자고 달랬지만 아이의 울음은 더욱 거세졌다. 할아버지는 횅하니 논밭의 일터로 나가버렸다. 동네 목욕탕에서 물놀이 하는 손녀가 어쩐지 시무룩하다. 물통 안에서 인형을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귓속말한다. “할-버지가 왜 화났는지 아세요?”놀라서 아이를 본다. 세상에, 말도 아직 서툰 아이가 걱정이란 놈을 알다니.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글쎄, 윤슬이가 할아버지에게 잘못했습니다. 하면 좋아하실 것 같은데?”손녀는 아무 말이 없다. 윤슬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데 정신이 팔려 대문 소리가 나는지도 몰랐다. 아이가 현관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남편에게 “할-버지” 하고 두 팔을 벌린다. 화해의 몸짓이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온다. 엄마와 떨어져 있더니 눈치가 생기는 걸까, 기특하고 측은하다. 남편은 여느 때와 다르게 멀뚱멀뚱하게 서 있다. 아이가 용서를 비는 몸짓으로 다가서는데 굼뜨기만 하여 답답하다. 어서 안아주라고 채근하자 손녀를 꼭 껴안는다. 아이는 아직 ‘할아버지’ 발음도 또렷하지 않다. “할-버지 잘못했어요.”입속에서 웅얼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한다. “윤슬이가 떼를 쓰면 할아버지는 마음이 아프다.”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아이가 작은 몸을 팔랑이며 천진하게 웃는다. 손녀에게 예쁜 새 옷을 입히고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보지만 할미보다 할아버지가 최고다. 남편은 손녀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끼니마다 굽고 딸애가 보내온 간식을 주머니에 챙겨서 시간마다 먹인다. 아이가 잠들지 않는 밤이면 유모차에 담요를 덮어서 동네 주변을 돌기도 하고, 때로는 자동차에 태워 바람을 쐬러 나간다. 일상이 바쁜 할미는 밤이 되어서야 손녀 곁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겨우 생긴다. 품 안에 안긴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새근새근 방 안의 공기를 포근하게 데운다. 고요하다. 꿈속에서 아이는 엄마와 뛰어놀까. 손녀가 깨어날까 봐 살그머니 이불깃을 끌어서 다독인다. 자식들 키울 때와는 다른 평화로움과 충만감이 차오른다. ‘완전함’이란 이런 느낌일까. 잠든 손녀의 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다. 딸애가 쉬는 날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손녀의 낯익은 침대와 장난감을 보여 주었다. 갑자기 통화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었다. 학교 일이 끝나면 윤슬을 데리러 온다고 엄마는 약속했었다. 아이 생각대로라면 데리러 와야 했다. 아이에게는 앞뒤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손녀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딸애가 삐걱거려 놓은 아귀를 맞추느라 할아버지는 진땀을 흘렀다. 설을 지낸 이튿날 아이의 보금자리인 딸애의 집으로 삼대가 용인으로 향했다. 아이도 마냥 놀고만 지낸 것은 아니었나 보다. 손녀는 어린이집 수업 일수를 또박또박 채웠다. 밥상머리에서는 가족 모두를 앉혀 놓고 기도를 맡아 한다. 식구들 이름을 불러주며 고사리손으로 한 줌씩 일용할 양식을 퍼 나르니 모두가 즐겁다. 순진무구한 아이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할아버지가 아이의 물고기를 탐낸다. 장난감은 운전대 위의 휴대폰 거치대로 안성맞춤이다. “윤슬아, 물고기 한 마리 가져가도 되겠니?”아이가 머뭇거리다 파란색 물고기를 벽에 붙여 보인다. 고무로 된 물고기는 아이가 손을 떼자마자 툭 방바닥에 떨어진다. “ 할-버지 물고기는 벽에 붙지 않아요, 대신 이것 가져가셔요.” 동화책을 한 권 내밀며 물고기 대신 가져가란다. 굼뜨기만 하여 답답하다. 어서 안아주라고 채근하자 손녀를 꼭 껴안는다. 아이는 아직 ‘할아버지’ 발음도 또렷하지 않다. “할-버지 잘못했어요.”입속에서 웅얼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한다. “윤슬이가 떼를 쓰면 할아버지는 마음이 아프다.”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아이가 작은 몸을 팔랑이며 천진하게 웃는다. 손녀에게 예쁜 새 옷을 입히고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보지만 할미보다 할아버지가 최고다. 남편은 손녀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끼니마다 굽고 딸애가 보내온 간식을 주머니에 챙겨서 시간마다 먹인다. 아이가 잠들지 않는 밤이면 유모차에 담요를 덮어서 동네 주변을 돌기도 하고, 때로는 자동차에 태워 바람을 쐬러 나간다. 일상이 바쁜 할미는 밤이 되어서야 손녀 곁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겨우 생긴다. 품 안에 안긴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새근새근 방 안의 공기를 포근하게 데운다. 고요하다. 꿈속에서 아이는 엄마와 뛰어놀까. 손녀가 깨어날까 봐 살그머니 이불깃을 끌어서 다독인다. 자식들 키울 때와는 다른 평화로움과 충만감이 차오른다. ‘완전함’이란 이런 느낌일까. 잠든 손녀의 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다. 딸애가 쉬는 날 아이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손녀의 낯익은 침대와 장난감을 보여 주었다. 갑자기 통화하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울었다. 학교 일이 끝나면 윤슬을 데리러 온다고 엄마는 약속했었다. 아이 생각대로라면 데리러 와야 했다. 아이에게는 앞뒤 상황을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손녀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딸애가 삐걱거려 놓은 아귀를 맞추느라 할아버지는 진땀을 흘렀다. 설을 지낸 이튿날 아이의 보금자리인 딸애의 집으로 삼대가 용인으로 향했다. 아이도 마냥 놀고만 지낸 것은 아니었나 보다. 손녀는 어린이집 수업 일수를 또박또박 채웠다. 밥상머리에서는 가족 모두를 앉혀 놓고 기도를 맡아 한다. 식구들 이름을 불러주며 고사리손으로 한 줌씩 일용할 양식을 퍼 나르니 모두가 즐겁다. 순진무구한 아이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할아버지가 아이의 물고기를 탐낸다. 장난감은 운전대 위의 휴대폰 거치대로 안성맞춤이다. “윤슬아, 물고기 한 마리 가져가도 되겠니?”아이가 머뭇거리다 파란색 물고기를 벽에 붙여 보인다. 고무로 된 물고기는 아이가 손을 떼자마자 툭 방바닥에 떨어진다. “ 할-버지 물고기는 벽에 붙지 않아요, 대신 이것 가져가셔요.” 동화책을 한 권 내밀며 물고기 대신 가져가란다. “동화책은 싫다.”할아버지와 실랑이 끝에 아이는 마지못해 물고기 한 마리를 내어준다. 못내 물고기가 아깝다. 자동차의 흔들림에도 물고기가 찰싹 붙어있다. 손녀가 안 주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핑곗거리가 떨어져 겨우 받아온 것이다. 네 살 손녀의 매운 살림 솜씨에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보름 동안 손녀와의 생활이 꿈결같이 지나갔다. 책상 위 부엉이가 동그란 눈을 새침하게 내리뜨고 있다. 부드러운 깃털을 흔들어본다. 차돌 같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맴돈다. 어머니의 복숭아 장사 가까운 대형 할인점에 들렀더니 과일 진열대에 잘 익은 복숭아가 시선을 끌어들인다. 살며시 만지기라도 하면 손자국이 움푹 날 듯 백도의 노르스름하고 옅은 분홍빛이 탐스럽다. 어머니는 여름 한 철 복숭아 장사를 했다. 농촌에서 모내기가 끝나면 허리를 펴며 심호흡을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마을 숲속 그늘에서 이웃들이 한가롭게 낮잠을 청할 때, 산 너머 과수원에서 떼 온 복숭아 함지박을 이고 고개 너머 마을로 팔려 다녔다. 어머니의 복숭아 장사는 동네에서도 친한 이웃 몇 사람 외에는 아는 이가 없을 만큼 소리 소문 없이 했다. 어머니가 장사해도 복숭아를 먹어 본 기억은 없다. 돌아올 때 함지박은 늘 비어있었다. 돈 대신 보리쌀이나 다른 곡식으로 물물교환을 하며 장사를 융통성 있게 꽤 잘하셨다. 복숭아 무게보다 더 무거운 자루를 이고 어둑 녘에 오실 때면 우리들은 마중을 나가 길목에서 기다렸다. 어머니는 요술 장수처럼 복숭아 장사를 다녀오시면 우리의 낡은 옷과 구멍이 난 가방을 새것으로 바꾸어 놨다. 어려운 살림이라 두 살 터울인 막내 경이가 있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작은언니와 내 옷만 새 옷이었다. 언니의 옷은 풀색 셔츠였고 나는 분홍색이었다. 옷깃의 예쁜 레이스는 뜀박질할 때마다 나풀대었다.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두 볼에 볼그스름하게 물들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었다. 언니가 풀색 셔츠를 입고 그네를 탔다. 아이들은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렸다. 하늘 높이 훨훨 그네를 타는 언니의 모습을 구경하며 내 어깨에 힘이 솟았다. 언니의 예쁜 새 옷에 압도되어 아이들은 차례를 양보했을까, 키가 작은 언니는 그네를 뛸 때마다 한 마리 새처럼 날았다. 서예를 가르치며 한 우물만을 파온 언니의 강단은 그때 이미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내 친구 엄마가 찾아왔다. 딸이 떼를 써서 못 살겠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어 어머니는 호탕하게 웃었다.“정란이 엄마는 복숭아 장사해서 새 옷도 사주고 가방도 사 준다”라고 복숭아 장사하라고 조른다고 했다. 어머니를 따라 친구의 엄마와 주변의 아낙들이 복숭아 장사를 하려 나섰지만 내 친구가 나와 같은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었는지 기억은 없다. 어머니의 복숭아 장사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구안괘사로 병이나 그만두었다. 우리들 자매들이 어린 시절의 레이스 셔츠를 추억으로 가끔 끄집어낸다. 레이스 셔츠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없는 막내다. 어머니가 만약 경이의 셔츠를 샀더라면 옅은 보라색일 것 같다. 막내에게 잘 어울리는. 어머니의 빈집 오랜만에 들른 친정집은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주인의 부재를 알린다. 집안은 다행히 말끔하다. 부엌방 냉장고는 켜져 있고 각 방문은 바람이 통하게끔 반쯤 열어 놓은 상태로 있다. 눈에 익은 꽃무늬 다홍색 이불이 옥 장판 위에 반듯하게 깔려 있다. 어머니는 일흔아홉 연세에도 텃밭을 일구며 매사에 활력이 넘쳤다. 그해 봄, 집 짓는 일을 직접 일러 시키며 일꾼들의 새참을 신바람 나게 준비하였다. 그들도 호흡을 맞추며 두 몫으로 일했다. 붉은 벽돌 양옥집이 완공되었을 때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당에는 거름 무더기가 사라지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백합과 매화나무, 목련을 구해다 심고 담장 위로는 덩굴장미를 올렸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일하다 들어올 때면 흙 묻은 신발은 계단 아래서부터 벗고 다녔다. 집 구경을 오는 마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신발 옆에 나란히 벗었다. 민망하여 손을 잡아끌면 그들은 손사래를 쳤다. 이웃들은 새집을 둘러보며 어머니의 수고와 애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의 빛나는 전성기는 삼 년을 못 넘겼다. 처음 병이 났을 때 곧 일어나시겠지 했다. 언제나 우리 집안의 버팀목으로 항상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에게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예전의 모습으로 유지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스러움은 마음 언저리에 남는다. 여름 장마가 지나간 뒤였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집을 찾았다. 마당 가 잡초는 웃자라 목련과 매화나무를 뒤덮으며 지붕을 향해 뻗어 있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허둥지둥 풀을 벴다. 마당이 훤해질 즈음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며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다. 예전의 어머니라면 다리를 끌고라도 먼저 낫자루를 잡으며 ‘남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을 테다. 예전의 기상 넘치던 어머니 모습은 어디로 다 가고 아흔을 눈앞에 바라보는 쇠잔함은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지하 창고에는 어머니의 손때 묻은 농기구들이 주인을 기다리듯 잘 정돈되어 있다. 어머니의 분신과 다름없는 농기구들이야말로, 당신께서 아직 온전하다는 것을 믿고 싶지만 언젠가 놓아 버려야 할 동아줄임에 애달프다. 젊은 시절, 자식들을 바라보며 호밋자루와 함께했던 세월을 어떻게 한순간이라도 잊을 수 있을까. 병석에서 이따금 ‘농사를 한 번만 더 지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짙어가는 병색은 의욕도 희망도 사위어 갔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새집의 정경이 선명하게 있다. ‘대문을 열면 뒤란 모퉁이에 지붕 높이 올라가는 단풍나무가 있고 봄이면 목련과 매화, 복숭아꽃이 핀다. 현관문을 열면 부엌의 냉장고가 보인다. 불을 지필 수 있는 작은 방의 유리 책장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큰오빠 사진이 나란히 있다.’ 당신 자식들 손자 손녀 이름도 깜박거려 애를 태우기도 하지만, 고향 집 정경은 눈을 감고도 환하다. 아득한 시간은 추억 따라 머문다. 감자를 심는 이른 봄이었던가. 단잠에 취해 있는 새벽이면 어머니의 큰 목소리에 잠을 깬다. 카랑한 음성은 이불을 관통한다. 덜 깬 잠으로 얼떨결에 부엌으로 튀어나온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철퍼덕, 무쇠 솥뚜껑에 주저앉다 차가운 감촉에 놀란다. 얼음 조각처럼 매서웠던 어머니의 호령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장독대 옆 작약 꽃송이가 잡풀 속에서 함초롬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난 유월 어머니와 다녀간 뒤 거의 일 년 만이다. 장마가 오기 전 웃자란 풀을 베어낸다. 뒤란에서 남편이 밀짚모자를 곧추세우며 땀방울을 훔쳐낸다. 담장 위에 붉은 덩굴장미가 탐스럽다. 부재중인 어머니에게 완연한 봄을 보여주고 싶다. 장독대의 작은 항아리를 씻어 장미꽃을 한 아름 꽂아 마루로 옮겨 놓는다. 어머니가 예쁘게 건조된 꽃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어머니는 살아생전 ‘재각’으로 새집을 지어 염원을 이루었으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새집’ 재각으로 잘 지키는 일이 도리일 것이다. 이제, 고향 땅 아버지 무덤 옆에 당신의 몸을 뉘고 싶은 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어머니를 모시고 한동안 고향에서 지내고 싶다. 닫힌 창문을 활짝 열어 어머니와 함께 맞이할 수 있을지.어머니의 빈집에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가을이 머무는 자리 새벽녘,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세 시가 조금 넘었다. 정신을 맑게 하려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길고 지루했던 장마가 지나간 자리에, 모처럼 그믐달과 함께 별이 총총히 떠 있다. 어느새 초가을이 성큼 다가오나 보다. 서늘한 바람결이 상쾌하다. 조금 전 꿈속에서 남편과 마술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듯, 둘이서 복숭아꽃일까 매화꽃일까. 꽃나무 가지를 타고 들꽃과 풀꽃을 찾아 숲속을 날아다녔다. 좀 더 높이 날 때는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를 날았을까. 지리산자락 선산의 시어머님 묘지에 이르러 깨어났다. 병석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던 어머님이셨다. 정작 가실 때는 시곗바늘이 제자리에 멈추듯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모습이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이었다. 보통 때와는 다르게 불그죽죽한 대소변이 온 방바닥으로 흥건하게 쏟아졌다. 어머님께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낌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씩 드시던 곡기도 끊고 이따금 거친 숨을 몰아쉬시곤 했다. 죽음의 임박함을 깨달으면서 신부님께 병자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성당에 연락했다. 어머님의 영혼이 천상낙원에 평안히 들 수 있도록 매 순간 기도드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임종하시기 이틀 전, 방안 가득히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점심나절이었다. 누워 계시는 창문 앞의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었다. 어머니와 나란히 누웠다. 오랜 병석이지만 말이 없는 조용한 성품이라 아픈 내색도 하지 않는 분이셨다. 야윈 두 볼을 가만히 쓰다듬어보았다. 퀭한 눈이 더욱더 깊숙해 보였다. 이따금 바람이 스치며 창밖에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어머님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세요.” 얼굴에 실낱같은 미소가 어린다. “어머님, 저는 잔잔한 바람이 되고 싶네요. 저기 은행잎 좀 보세요. 어머님도 잔잔한 바람이 되어 은행잎에 앉아 내려다보실 테지요.” 며느리의 간절한 주절댐은 어머니의 눈과 마주쳐 보려고 끝이 없다. 기력을 다하신 어머님의 눈길이 가늘게 떨린다. 퀭한 눈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을 읽는다. “어머니, 하시고 싶은 말씀, 보고 싶은 사람, 잡수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어머니는 아주 희미하게 미소로 답할 뿐이다. 돌아가시기 한 시간 전이었다. 신부님께서 어머님께 병자 성사를 주셨다. 시어머니는 십여 년 동안 병환으로 성당에 나가지 못해 집에서 매달 병자 영성체를 받아 모셨다. 신부님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주름진 얼굴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어머님의 손을 꼭 잡은 신부님의 그윽한 눈빛은, 어머님을 하늘나라에 이르는 천국의 길로 평안히 인도하며 배웅했다. “안나 할머니, 저희보다 조금 먼저 하늘나라에 가시는 것이니 평안히 잘 가세요. 그리고 예수님께 저희 안부도 꼭 전해 주셔야 해요.” 신부님의 손을 맞잡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갈라진 음성이지만 어린아이처럼 순한 음성으로 “야”하고 대답하셨다. “야” 하시는 어머니의 음성에 순간 전율이 왔다. 쇠잔한 얼굴은 온화하고 편안해 보였다. 어머님의 병자 성사는 신부님과 우리 모두에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님의 정이 더욱더 그립다. 시집와서 어머님과 함께한 세월이 이십여 년이었다. 무던한 성품이신지라 좋고 싫은 표현을 잘하지 않던 분이셨다. 손자를 업어 키우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꺼이꺼이 울었다. 집안일에도 어머니의 손길이 맴돌았다. 김치를 담글 때면 미리 마늘을 까서 준비해 주었고, 빨래가 마르면 차곡차곡 개키는 일도 어머니의 소임이셨다. 살아생전 시댁 집안의 대소사를 말없이 도맡아 하며 어려운 가운데 식솔들을 모두 건사하셨으니, 두터운 덕은 우리 가족의 귀감이 될 일이었다. 옷장의 위쪽 서랍에 어머니가 쓰시던 금비녀가 있다. 장례식을 마치고 소지품을 챙기면서 비녀를 발견했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십 년 전 머리에 쪽을 찌던 비녀다. 머리카락을 자르고부터 sites.google.com/view/gpuhzcnwflt 비녀는 장롱 깊숙이 들어가 내 기억에서 희미해졌었다. 금비녀로 정갈하게 쪽진 어머니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어머님의 장례식은 집에서 삼일장으로 지냈다. 운구차가 선산으로 향할 때 망자를 위하여 바치는 신자들의 위령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천국으로 가시는 길목은 환했다. 코스모스 하늘대는 황금빛 가을 들판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죽음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님을 체험한다. 사람이 태어나 마지막 순간까지 기력을 다 쓰고 한 줌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때 이별은 숭고하며 겸허하다. 죽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의 길이다. 어머님의 기일이 곧 다가온다. 앞마당에 잔잔한 바람결이 스칠 때 노랗게 물든 은행잎 사이로 가을이 머문다. 어머니의 능선 두릅 밭이 있는 양지 골로 차를 몰았다. 시원하게 잘 닦여진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포장이 되어있다. 그동안 고향 산천을 잊고 지낸 세월의 공백을 실감 나게 한다. 아스라이 보이는 비탈 아래로 나락 단을 이고 다니던 옛 들길은 제트기가 꼬리를 그은 자국처럼 하얗다. 어릴 때 보았던 소나무는 동화 속 마을처럼 어느새 아름드리 큰 소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우뚝 솟은 소나무 옆에는 앞이 확 트인 자리에 아버지 묘가 있다. 얼마 만에 찾는 산소인가. 어머니에게 자주 들린다지만 집에서 떨어져 있는 묘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버님 무덤에 절을 올린다. 아버지 모습이 가족사진 속에서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계신다. 네 살 기억으로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철들 때까지 아버지 딸임에 무턱대고 자부심을 가졌다. ‘엄마 젖이 모자란 셋째 딸은 아버지가 손수 끓여준 우유를 먹고 자라며 유독 귀염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 마음속 깊은 곳에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은 일종의 꼬리표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물으면 나는 항상 아버지 딸이었다. 아버지 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버지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기분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증표는 남달랐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식들을 온전하게 지키며 죽어서는 아버지 옆에 고이 묻히는 것이 소망이었다. 산소 위쪽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윗대 조상들의 묘가 이장되어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어머니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묘를 선산에 모시는, 힘에 겨운 일을 해내었다. 이제 남은 한 가지 일은 당신께서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흙과 함께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신다. 작년 봄 어머니는 팔순이 가까운 황혼에 새집을 짓기 시작했다. 빨간 벽돌 양옥집은 아담하고 견고하게 지어졌다. 사방이 산으로 뒤덮인 아버지의 고향으로 번잡한 도시와는 달리 장날이면 버스가 한 번 들어온다. 투자 가치와는 상관없는, 당신께서 팔십 평생 염원해온 숙원 사업이라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집을 지은 후, 한동안 행복하셨지만, 예전 같지 않게 하루의 절반을 누워서 지냈다. 서산에 해가 뉘엿해지면 고추밭에 호밋자루를 던져놓고 집으로 들어와 군불을 지핀다. 밭에서 종일 지내며 당신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였다. 이제 힘을 쓸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의 기상은 천년만년 뻗칠 줄 알았는데, 요즈음 자신이 없다고 자주 말씀하시기에 가슴이 먹먹해온다. 집을 떠나 때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와 정답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창가에 앉아서 자식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다. 봄 햇살이 산허리를 자르고, 연초록 두릅을 담은 소쿠리가 묵직해 온다. 목장갑 사이로 두릅의 가시가 손가락을 찌르며 또 다른 통증으로 다가온다. 한평생 흙을 자식처럼 사랑하며 옥토를 가꾸었던 어머니였다. 팔순이 넘도록 아버지의 본향인 산골짜기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어머니. 산기슭 굽이굽이 능선이 어머니의 일터요 쉼터였다. 낮게 드리우진 저녁노을 사이로 산마루 연초록 잎사귀들이 작은 마을 어귀를 푸른빛으로 채운다. 어머니는 토끼띠 어머니는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잠깐 외출을 할 때도 언제 올 것이냐고 먼저 묻는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내 손가락을 더듬어본다. 손가락이 하나 펴져 있으면 쉽게 끄덕이고 놓아 주지만 손가락이 두 개 이상 펴지면 그렇게 많이 기다려야 하느냐고 손가락을 쉽게 놓지 않는다. 외출 중에도 어머니 생각으로 부랴부랴 다녀오면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어 계신다. 머리가 눈썹을 덮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예쁜 핀과 머리띠를 샀다. 토끼 모양과 꽃 수술이 달린 진달래 빛깔이다. 아이 마음을 담고 있는 어머니에게 무슨 색이 어울릴까. 많은 시간을 할애한 만큼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살아난다. 선물이라고 하자, 머리에 둘러보더니 머리도 당기고 아프다며 필요 없단다. 예쁘니 너 해라고 한다. 은근하게 목욕하고 머리띠를 두르자고 살갑게 청한다. 저녁밥을 준비하다 조용하여 어머니 방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종일 잠이 도망을 가고 없다던 어머니는 새근새근 주무신다. 머리에는 싫다던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진달래 빛 토끼 한 마리가 깡충거리며 뛰어놀고 있다. 진달래를 닮은 홍조가 어머니의 볼 위로 머문다. 꿈속에서 토끼와 술래잡기라도 할까. 따뜻하게 환한 빛이 내 몸 안으로 퍼져온다. 언젠가 객지에 있는 딸에게 큰 인형이 갖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어린이냐고 막 웃더니 생일날 두 마리의 토끼 인형을 선물로 사다 주었다. 마음이 허해질 때는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진다. 한낱 인형이지만 생명을 불어넣는다. 어머니는 토끼 인형을 데리고 논다. 올해 살다 보니 어머니가 태어난 토끼해에 애들이 태어났다고 신기해하며 작은 토끼 큰 토끼를 쓰다듬는다. “애야, 너희들이 나와 같은 토끼해에 태어났다. 알겠니?” 어머니는 팔순 노인답지 않게 ‘야야’ 가 아닌 ‘애야’라고 매끄러운 서울 말씨를 사용한다. 갑자기 어머니가 요즘의 젊은 사람 같다. 참 세련된 우리 어머니다. 마구 즐거워진다. 하하. 보드라운 서울말 아들딸이 성장하여 객지로 떠나고 남편과 둘만 있는 집은 조용했다. 어머니를 모셔온 뒤로 하루의 일상이 겨울철 보일러 기름이 들어오듯 후끈하다. 욕실에서 목욕을 시킨다. 온풍기를 켰더니 욕실 안이 따듯하다. 온풍기에 불이 들어오니까 “저것 봐라! 불이다.” 어머니는 소리 높여 아이처럼 웃는다. 뜨거운 불이니 만지면 큰일 난다고, 어머니 귀에다 큰소리로 주의를 시킨다. 연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크게 무서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어머니는 다섯 살 아이가 되다가 여든이 되기도 한다. 목욕통 물에 앉혀 요리조리 돌려가며 몸을 씻긴다.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시너지효과를 얻는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니는 물에서 금방 나가자고 한다. 등에도 발에도 따뜻한 물을 자꾸자꾸 끼얹는다.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는 어머니의 작은 등이 동그랗다. 농부의 반평생이 꿈틀거린다. 머리를 곱게 빗기고 몸에 로션을 바른다. 터실터실한 무릎이 금세 부드러워졌다고, 참 좋은 약이라고 딸의 손을 끌어 무릎에 갖다 댄다. 어머니는 약을 좋아한다. 하반신 통증으로 진통제를 한 달분을 타 놓고 하루 두 번씩 먹는다. 종일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욕창이 생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엉덩이 옆의 약간 거무스레한 부분을 신경을 써서 마사지한다. 예전의 활력 넘치며 낭만적인 모습을 모처럼 본다. 어머니가 점점 익살스러운 아이가 되어 간다. 나도 어머니와 한패가 된다. 어머니를 부를 때는 “엄∼마∼” 하고 한 옥타브 올려서 길게 빼서 서울 말씨를 흉내 낸다. 나의 목소리에 솔깃해진 엄마는 좋아라고 아이가 되어 하하 웃는다. 처음에는 엄마가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다독이려고 해본 어투였는데 환히 웃는 모습이 좋아 습관처럼 보드라운 말씨를 흉내 내고 있다. 어쩌다 객지에 있는 딸이 오면 재미있어한다. 어머니가 큰언니 집에 있을 때였다. 셋째 딸의 다정한 목소리가 그리워 열 손가락을 꼽았다. 눈치 없는 아이는 주인의 눈에 났다. 큰언니는 짐 보따리 보내듯 어머니를 보냈다. 어머니는 서울 본토박이의 말씨를 신물이 나도록 들었을 테지만 정작 나의 보드라운 서울 말씨를 좋아했다. 굳이 핑곗거리를 찾자면 고향산천 가까이서 숨을 거두어 아버지 곁인 선산에 묻히고 싶다는. 어머니의 연서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시집을 읽어 드린다. 책 읽기를 즐기시는 어머니는 오른쪽 귀를 딸의 입 가까이 대고 옆구리를 바짝 기댄다. 좋아하실 만한 시를 골라 어머니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읽는다. ‘배추 농사지어 읍내 시장에 간다. 인건비 떼고 나니 땡전 한 푼 집에 가져갈 게 없다.’ 이 대목에서는 “참말로 농사일을 잘 아는 사람이네!”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어느 해 텃밭 농사지어서 감자 한 상자에 오천 원씩 받고 스무 상자를 헐값에 주고 왔노라고, 농부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도 남는 듯해 참 좋은 책이라고 칭찬한다. 나는 책을 덮고 아버지의 편지를 외워보라고 짐짓 보채듯 한다. 주름진 얼굴에 얼핏 엷은 홍조가 인다. 봄철 아지랑이 끼고 종달새 우는 봄이 왔습니다. 흘러가는 철도 한 단 더 높은 듯 우리 부부 후정 다정도 한층 더 두터워지는 듯 아리 삼삼한 얼굴 다정한 성음 차마 잊고 견딜 길 없어 공부를 둘째 두고 이런 사연 편지를 씁니다. 현처 원함과 같이 성공 길을 밟아갑니다. 안심하세요, 안심하세요. 아버지의 연애편지를 외우는 어머니의 낭랑한 목소리는 열여섯 수줍은 새댁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신혼 시절 아버지와 주고받은 수백 통의 사연은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있다. 아버지는 어질고 따뜻한 분이셨다. 가난한 살림에 맏이로 태어나 독학으로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옛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셨다. 마흔을 막 넘긴 사월 이른 아침 학교 사택에서 채소밭을 가꾸시다 혈압으로 쓰러졌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머니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어린 자식들을 거느리고 아버지의 본가로 들어갔다. 어머니 나이 서른여섯, 막내가 두 살이었다. 어머니는 오로지 자식들을 굶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농사일과 씨름했다. 일꾼 없이 처음 짓는 농사일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많이 울기도 했다. 하루해가 지면 농사일에 지친 몸으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목 놓아 울었다. 어머니의 통곡 소리는 좁은 골짜기를 흔들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은 어둑발이 내리면 귀신이 운다고 술렁댔다. 실성한 몰골로 농사일에 미쳐 신발이 해지도록 밤낮을 모르고 살았다. 선잠을 자다 보리쌀을 씻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새벽닭이 울었다. 모내기가 끝나고 추수 때까지의 겨를에도 함지박을 이고 복숭아 장사를 하여 육 남매를 공부시켰다. 어머니의 교육열과 헌신적인 노력은 자식들이 바르고 성실하게 자랄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땀으로 일궈낸 십 년 세월이었다. 한 해 벼농사는 대풍이었고 정부에서 주는 다수확 상에 선정되어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어머니는 낡은 고향 집을 허물고 빨간 벽돌 양옥집을 지었다.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그동안 한 푼 두 푼 저축한 돈으로 평생 소망하던 일을 이루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모시고 싶어 했다. 벌초하러 오는 친인척들이 하룻밤 편히 묵을 수 있도록 하여, 당신이 세상을 떠나도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제각祭閣으로 쓰이길 원했다. 일흔아홉, 어머니가 이루어 낸 원대한 꿈이었다. 바지런한 손길에 새집은 구석구석 윤이 났다. 담장 위로 덩굴장미가 피어오르고 장독대 옆으로 무리 지어 피어난 흰 백합은 진주 이모 집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정경이라 놀라웠다. 시골과 도시적인 낭만이 어우러진 정원은, 그동안 세월 속에 묻혔던 어머니의 여성스러운 성품을 잘 드러냈다. 그동안 자식들을 보살피며 뒤치다꺼리하느라 억척스럽게 사셨던, 어머니에게는 사라진 지 오래된 여자의 거울이었다. 어머니가 병이 났다. 농사일로 척추가 휜 몸은 한 번 쓰러지자 회복이 어려웠다. 혼자 있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고 호소했다. 강인하게 홀로 사셨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들과 딸네 집을 오가며 한동안 지냈지만 결국 요양원으로 모셨다. 어머니는 새집 지을 때의 도도함처럼 요양원 가시는 걸 거부했다. 자식들을 욕 먹이는 민망한 일이라 여겼다. 단 한 번도 어머니의 마음을 거스른 일이 없는 큰오빠를 그리워했으리라. 효자였던 그는 온화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다. 큰오빠는 스물아홉 가을을 맞이하든 해, 급성 백혈병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자식을 잃으니 세상이 두렵고 부끄럽다고, 어머니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바깥을 나가지 않았다. 몇 해 동안 농토를 등지고 진주 큰 이모 댁을 오가며 마음을 의탁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어머니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어머니는 요양원을 거쳐 우리 집으로 모셔졌다. 당신께서는 자식들을 원망하지 않으셨다.“모두가 잘된 일이다”라고 좋아하시며 내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의 환한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목욕실에 어머니를 앉히고 비누칠을 한다. 굽은 등이 왜소하다. 짧은 머리에 거품을 낸다.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은 온갖 괴로움과 어려움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온 세월의 숭고한 표징이다. 밝은 분홍색 샤스로 갈아입히니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딸이 당신의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엄마와 딸의 역할을 바뀌면 딸에게 덜 미안할 것 같은 어머니의 심정이다. 한평생 자식들만 보고 살아왔다. 이제는 자식들이 그 은공을 갚아야 할 텐데, 어머니는 세상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끝없는 사랑은 자식들의 마음을 저미게 한다. 수시로 흐려지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 오직 아버지의 친서만은 살아있는 사랑의 증표였다. 아버지 편지를 낭송하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열여섯 수줍은 미소가 복사꽃으로 물든다. ‘어머니의 연서’는 삶의 서정이 깃든 고전으로, 훗날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이 될 것이다. 연말에 어머니와 고향 집에 다녀오려 한다. 어릴 적 설날 풍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어머니가 떡국 끓일 가래떡을 썬다. 따뜻한 구들목에서 육 남매의 웃음소리가 떠들썩하고 사립문 밖에는 눈이 쌓인다. 이루지 못할 약속 어머니는 일흔아홉에 평생 숙원 사업이었던 새집을 이층 양옥으로 지었다. 집을 지을 즈음 자식들은 건강을 걱정했다. 큰언니의 반대가 제일 컸지만 군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새집을 먼지 한 톨 없이 쓸고 닦고 가꾸며 행복해했다. 비록 삼사 년의 짧은 사랑이었지만 그 순간은 너무 소중하여 삼사십 년의 세월과 맞먹는 시간이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게 집 한 칸 짓는 일이 소원이었으며 새집이 조상들의 재실로, 자식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길 원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 두셨든 할 일을 이루어 마음을 놓아 버린 것일까. 어머니의 건강은 어느새 약해져 그동안 가꾸던 텃밭을 이웃에게 내주며 도조를 받도록 가닥을 지어갔다. 앓아누워도 곧 털고 일어났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점차 도랑가 출입이 어려워졌고 자식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병원을 드나들며 입원을 하면서 맏딸이 책임지고 보살피기로 했지만, 어머니가 있을 곳은 딸들 집도 혼자 사는 외아들 집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요양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화를 했다. 활력이 넘치던 어머니 특유의 음성은 찾을 수 없고 정신이 나간 멍한 목소리만이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삼 일째 되는 날에는 사람을 못 알아보는 듯했다. 가까이 있는 큰언니가 병문안 하러 가도 외면을 했다. 평생 후회할 일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십일 만에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어머니의 마음은 집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듯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날아올랐으리라.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일이 잘돼서 다행이다’라고 좋아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한동안 서로 의지가 되었던, 같은 방의 노인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목소리는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가듯 기운찼다. 그동안의 원망은 사라지고 안도하는 마음이라 그저 죄송하고 민망할 뿐이다. 어머니가 오신지 석 달이 되어가고 있다. 여름 내도록 차가운 얼음을 입에 달고 지냈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사다 나르다 어머니의 입맛을 터득한 뒤로는 집에서 얼음을 만들어냈다. 우유에다 초콜릿을 넣은 얼음을 만들기도 하고 싫증을 내면 좋아하는 커피도 조금씩 더 넣기도 한다. 어머니는 열 손가락을 흔든다. 세상에서 이런 맛은 처음 먹어본다고 한다. 어머니의 입맛만큼 옆에서 신이 난다. 어머니를 모시자면 요양 보호사 교육과 자격증이 필요했다. 어머니를 서울 언니네로 보내기로 하고 두 달간의 수강 신청을 했다. 어머니가 서울로 가실 무렵이었다. 며칠 전부터 손발을 떨고 밤새도록 잠을 못 주무셨다. 서울이 싫단다. 자꾸만 시골집으로 가서 요양 보호사 오면 안 되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불안 때문에 두려움에 찼다. 어머니 모습에서 낯설지 않는 오래전 나의 모습이 묻어온다. 고등학교 때였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던 큰 오빠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도시의 큰 이모 집으로 전학을 왔다. 이모 집은 풍요로웠고 가족들은 선하고 따뜻했다. 이모부님과 이종들은 직장 따라 한 해 주기로 집으로 들어왔다. 나와 동갑인 이종 자매가 먼저 왔고 이모부와 군 복무 중이던 이종 오빠가 차례로 들어와 조용한 집안은 대가족이 되었다. 식구가 한 사람씩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가족들과 어떻게 적응할까, 가슴이 떨리는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걱정할 일은 전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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